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백원(百源), 호는 태호(兌湖). 별제 조응경(曺應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관 조세준(曺世俊)이고, 아버지는 도사 조기서(曺麒瑞)이며, 어머니는 임씨(林氏)이다. 박동열(朴東說)의 문인이다.
정유재란 중에 형과 아우를 잃고, 이어서 광해군 때 정국의 혼란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서울을 떠나 고향에 내려가 있던 중,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빙고별제(氷庫別提)가 되었다.
이어서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고 태인현감이 되어 이서(吏胥)들의 비리를 단속하여 관기를 바로잡았다. 그 뒤 평시서 영(平市署令)을 거쳐 익산군수·온양군수를 차례로 지내고 군기시정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 영암에 내려가 향약을 제정, 향민들의 풍속순화에 힘썼다.
또한, 영암의 소화산(小華山)에 별당을 짓고 10여 년간 독서하였으며, 뒤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영암의 구림사(鳩林祠)에 제향되었다. 시문집에 『태호집(兌湖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