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아버지는 검교정당(檢校政堂) 조호(趙瑚)이다. 그는 술수(術數)의 학문에 능통하였다.
1400년(정종 2) 방원(芳遠: 뒤의 태종)이 그의 동복형인 방간(芳幹)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고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02년 9월에 완산부윤이 되었고, 1405년에 평천군(平川君)에 봉작되면서 한성부윤이 되었다. 1409년 10월에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옥사에 관련되어 광양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인 1410년 2월에 유배지에서 처형되었다. 이 때 아버지와 아들도 연좌되어 일문이 화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