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이전부터 간행되던 미술잡지 등을 통하여 파리 중심의 새로운 서양미술 조류를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집안의 큰 재난을 보고 절망한 심정을 표현한 1923년작 「파란」은 한국 서양화사에서 최초의 추상화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주경은 미래파적인 경향을 보이는 「파란」과 앵포르멜의 전조로 일컬어지는 「생존」(1930) 등을 통해 순수 추상화를 시도함으로써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주경은 당시 국내의 서양화가들이나 일본의 데이코쿠미술학교와 도쿄미술학교 출신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작품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적인 작품경향을 띠었다. 일본 유학시절에도 오랜 기간 데생을 연구하였고 2년간 조각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는 회화와 조각을 함께 출품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다양한 서구미술사조를 실험하고 모색하였다.
일본 유학시절인 1932년 ‘동경 조선미술학우회’를 창립한 뒤 193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고 1935년에는 재동경유학생의 모임인 ‘백우회’를 조직하였다. 귀국 후에는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계성학교 미술교사(1942), 대구 미국문화원 원장(1950), 한국미술협회 경상북도지부장(1962∼1971)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행정가이자 미술교육가로서 활약하였다. 특히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지역의 서양화단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74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로 추대되어 1978년까지 사실적인 자연풍경과 꽃 등의 정물화를 해마다 출품하며, 만년의 창작열정을 쏟았다. 대표작으로 「파란」(1924), 「생존」(1930), 「붉은색 배경의 나부(裸婦)」(1940) 등이 있다.
2006년 주경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주경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