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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의 각종 활자 주조 내력을 1858년에 탁본한 금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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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각종 활자 주조 내력을 1858년에 탁본한 금석문집.
내용

1첩. 탁인본. 윤정현(尹定鉉) 기(記), 김병국(金炳國) 서(書)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여기에는 계미자(癸未字, 일명 丁亥字) 10만자를 비롯하여 경자자(庚子字)·갑인자(甲寅字)·임진자(壬辰字)·정유자(丁酉字)·임인자(壬寅字)·생생자(生生字)·정리자(整理字, 加鑄 포함) 등 여덟 개의 주자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403년(태종 3)에 나온 경연(經筵)에서 쓰던 고주(古注)인 『시(詩)』·『서(書)』·『좌전(左傳)』을 자본(字本)으로 하여 이직(李稷) 등이 10만자를 주조한 것을 계미자라 일컫고, 그 계미자가 너무 크다고 하여 이천(李蕆) 등이 다시 개주(改鑄)한 것을 경자자라 하였다.

한편 이것이 너무 작아 읽기가 어려워 그보다 큰 글자로 또다시 개주한 것을 갑인자라 일컫는다. 갑인자는 『효순사실(孝順事實)』과 『위선음질(爲善陰騭)』 등을 자문으로 하고 부족한 글자는 진양대군(晉陽大君)이유(李琉)가 써서 김돈(金墩) 등으로 하여금 주자하게 하였다.

1772년(영조 48) 정조가 동궁에 있을 때 갑인자로 찍은 『심경(心經)』과 『만병회춘(萬病回春)』 두 책을 자본으로 15만자를 주조하여 운각(芸閣)에 간직한 임진자, 1777년(정조 1) 서명응(徐命膺)에게 명하여 갑인자를 자본으로 하여 15만자를 더 주조하고 내각에 간직한 정유자가 있다.

또한, 1782년 서호수(徐浩修)에게 명하여 한구(韓構)의 글씨를 자본으로 8만여 자를 주조하여 또한 내각에 간직한 임인자, 1792년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취진판식(聚珍板式)의 『강희자전(康熙字典)』의 글자를 자본으로 대·소 32만여 자를 목각한 생생자, 생생자를 자본으로 주조한 정리자 등에 관한 사실이 실려 있다.

뿐만 아니라 62년 뒤인 1857년(철종 8) 주자소가 불에 타서 그 이듬해에 김병기(金炳冀)·윤정현·김병국 등에게 명하여 정리자(大字 89,203자, 小字 39,416자)·한구자(韓構字, 31,829자)를 재주(再鑄)하여 불타다 남은 활자(175,698자)와 함께 주자소에 간직한 사실 등이 밝혀져 있다.

이 탑본 후미에는 이상 각 자를 주자감독한 사람의 명단이 부록으로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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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심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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