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나 외교상으로 청할 일 또는 알려야 할 사항이 있을 때 중국에 임시로 파견하였다. 때에 따라 진주사(陳奏使) 혹은 주문사(奏聞使)라고도 하였다.
중국과의 사이에 이루어진 주청의 내용을 보면, 중국 측의 항의에 의한 해명, 정치적 중대사건에 대한 보고, 고명(誥命)·인신(印信)의 수령 등과 같이 요청할 일이 주가 되고, 이 밖에 연호 사용, 내정간섭에 대한 항의, 왜정(倭情) 등의 보고, 인질(人質)·숙위(宿衛) 등의 파송, 혹은 궁정 간의 통혼문제 등에도 주청사가 파견되었다.
또한, 군사적인 면에 있어서도 청병·원병·파병 등에 관하여 양국 사이에 논의의 여지가 있을 때 주청사·진주사 등이 파견되었다. 사신의 구성원은 대개 정사·부사·서장관(書狀官 : 종사관)·통사(通事)·의원(醫員)·사자관(寫字官 : 서자관)·화원(畵員) 등을 중심으로 노자(奴子)까지 합쳐 40명이었으나, 후기 대청 사절로는 30명 내외가 되기도 하였다.
이들 사신이 중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40일 정도였으며 뒤에는 약 60일이었다. 사행로는 초기에는 수로(水路)로 간 때도 있었으나 대개 육로로 서울-평양-의주-압록강-구련성(九連城 : 진강성)-봉황성(鳳凰城)-성경(盛京 : 심양)-산해관(山海關)-북경(北京)의 2,049리의 길을 택했다. 갔다가 돌아오는 데는 대개 28일이 소요되었다. 수로로는 육로 1,900리, 수로 3,760리로 총 5,660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