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년부터 270년까지 재위하였다. 중양왕(中壤王)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연불(然弗)이다. 동천왕의 아들이다. 243년(동천왕 17) 태자가 되었고, 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외모가 준수하고 지략이 있었다.
왕비는 연나부(椽那部) 출신으로 짐작되는 연씨(椽氏)이다. 즉위와 더불어 동생 예물(預勿) 등이 모반하자 이들을 처형하고 왕위를 지켰다. 250년(중천왕 3) 국상(國相) 명림어수(明臨於漱)로 하여금 군사관계의 일도 아울러 관장하게 하여 국상의 군사·행정상의 권한을 강화해 주었다.
251년 왕비 연씨와 더불어 왕의 총애를 다투던 관나부인(貫那夫人)의 투기가 심해 서해바다에 수장하였다. 254년 명림어수가 죽자, 비류패자(沸流沛者) 음우(陰友)를 국상에 임명하였다. 255년 왕자 약로(藥盧 : 뒤의 西川王)를 태자로 삼았고, 다음해에는 공주를 연나부 출신 명림홀도(明臨笏都)에게 시집보냈다.
259년 중국 위(魏)나라 위지해(尉遲楷)가 침략해오자 태자하(太子河) 상류로 추정되는 양맥지곡(梁貊之谷)에서 격파하였다. 260년 졸본(卒本)으로 가서 시조묘(始祖廟)에 배알하였다. 재위 23년 만에 죽자 중천지원(中川之原)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