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은 사리당연(事理當然)의 극(極)이다. 명덕을 밝히는 것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 지선에 이르러 머무를 때에 나(我)와 지선이 하나가 되어 지선이 내 마음에 있는 것이 명덕이 되고, 명덕이 사물에 나타난 것이 지선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요, 지선은 지선이 되어 나와 지선이 무관하게 된다. 그리하여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표적(標的)이 될 수 없게 된다. 『대학』에서 말하는 지어지선은 내가 지선에 이르러 머무르는 것이지 남에게 지선에 이르러 머무르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된 자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 머무르고, 부모된 자는 자식을 사랑하는 데 머무르고, 임금된 자는 백성을 어질게 여기는 데 머무르고, 신하된 자는 임금을 공경하는 데 머무르며, 나라와 나라가 국교를 맺을 때에는 신의에 머무르는 것 등이 바로 지선에 머무르는 것들이다.
지선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지선에 이르러야(至) 한다.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면 반드시 이르기를 구하여야 하며, 이미 이르렀을 때에는 그 이른 것을 고수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이 참다운 머무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