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충주(忠州). 호는 장암(藏菴). 아버지는 영식(永植)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연희전문학교 재학시 정인보(鄭寅普)를 사사하였다.
1926년 대전보통학교를 수료하였고, 1931년 대전공립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32년 항일운동으로 투옥되어 연희전문학교(현재의 연세대학교)를 퇴교당하였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대전중학교 교유(敎諭), 1949년 전주명륜대학(明倫大學) 교수, 1951년『중도일보(中都日報)』 논설위원, 1952년 충남대학교 교수, 1956년 호서문학회(湖西文學會) 대표, 『대전일보(大田日報)』 논설위원 및 사장, 어문연구회(語文硏究會) 회장, 한국언어문학회(韓國言語文學會) 회장, 한글학회 대전지회장, 외솔회 대전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7년 충청남도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67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는 국문학(특히 향가) 및 지명학의 권위자로 일찍이 호서·호남을 중심으로 한 학문의 활동무대인 어문연구회와 한국언어문학회를 창립하였다.
충남대학교 재직시에는 후진양성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역량 있는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현재 그 문하생들이 학통을 이어받아 국어국문학계에서 맹활약을 함으로써 많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그의 품성은 고결하고 불의와 부정에는 조금도 굴하지 않는 강직한 기풍이 있어 학창시절에는 항일·배일사상으로 한때 옥고를 치른 일까지 있다.
주요논저로는 『향가여요신석(鄕歌麗謠新釋)』(1947)을 비롯하여 「정읍사(井邑詞)의 연구」(『아세아연구』 4-1, 1961) 등 20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