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년(삼근왕 2) 좌평(佐平) 해구(解仇)와 은솔(恩率) 연신(燕信)이 무리를 모아 대두성(大頭城)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시 덕솔(德率)의 관등에 있으면서 왕명을 받들어 정병(精兵) 500명을 거느리고 해구를 격살하였다.
482년(동성왕 4)에는 병관좌평(兵官佐平)에 임명되어 죽을 때까지 재직하면서 군사업무를 관장하였다. 이로써 한동안 권력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던 진씨(眞氏)세력이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것을 계기로 다시 득세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