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主山)이라고도 한다.
풍수지리(風水地理)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나 풍수지리서에서는 실제로 진산이나 주산이라는 용어는 별로 쓰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으로 불리는 용어이다. 혈장(穴場)이 있는 명당(明堂) 뒤에 위치하기 때문에 후산(後山)이라고도 하며, 그것을 진호(鎭護)한다 하여 진산이라는 명칭이 나왔다.
산맥이 뻗어 가는 것을 용(龍)이라 한다. 멀리 태조산(太祖山)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행룡(行龍)을 통하여 크고 작은 지산(支山)을 이루면서 혈(穴)이 되려는 곳을 얼마 못 미쳐 두어절 떨어져 솟은 높은 산을 진산 또는 소조산(少祖山)이라고 한다.
만약 혈장 뒤에 높은 산이 있더라도 그 산의 갈라진 줄기가 많아 혈장과 상당한 거리를 둔다면 이런 산은 진산이라 할 수 없고, 주필산(駐蹕山)이 된다. 진산은 북현무(北玄武)에 해당된다. 진산과 주산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는데 서울의 경우 삼각산(三角山)을 진산, 백악산(白嶽山)을 주산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중국이나 고려에서는 일부 군현에만 진산이 존재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대다수 군현에 진산이 선정되었다. 공간적 특징을 보면 조선시대의 진산들은 다수가 풍수적 주산(主山) 혹은 조산(祖山)을 중심으로 하는 읍기(邑基) 배후의 산이었다. 고려시대의 지방군현은 개경과 달리 치소가 산성 형태의 치소성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풍수적 형국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읍기배후의 산을 진신으로 선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말선초를 지나면서 치소가 산을 후면에 두면서 평지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졌고 읍치의 공간적 구조도 도성 즉 한양을 모델로 변하게 되었다.
진산은 한 마을이나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를 들어, 개성은 송악산(松嶽山)이 진산이다. 조선 초기에 나온 지리서에는 대부분의 도읍에 대하여 진산을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