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 군제의 강화와 관련하여 경기도와 접한 요충지이며 관동지방의 중심지인 춘천부의 군사적 역할을 중요시하여 설치되었다.
1887년(고종 24) 12월 종래의 춘천부사를 독련사(督鍊使)로 바꾸고, 체제는 통제사(統制使)에 준하도록 하였다. 이듬해 1월 독련사를 다시 진어사로 개칭하게 되었고, 2월에 진어사를 춘천부진어사(春川府鎭禦史)로 바꾸었다가 이어 5월 진어영의 경기도 이속(移屬)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동북지방의 요충지로서 춘천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오히려 그 기능을 강화시켰다.
즉, 춘천부에 유수(留守)를 두도록 하면서 춘천부진어사를 유수 겸 진어사(留守兼鎭禦使)로 승격시켜 경기도와 강원도지방의 부근 여러 읍을 4도(都)의 예에 따라 소속시켜 관할하도록 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와 지방관제의 개편에 따라 진어영과 함께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