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 군제의 강화와 관련, 경기도와 접한 요충지이며 관동지방의 중심지인 춘천부의 군사적 기능을 중요시하여, 1887년(고종 24) 12월 종래의 춘천부사를 독련사(督鍊使)로 바꾸었다가 이듬해 1월 진어사(鎭禦使)로 개칭하였는데, 그 때 진어사 소속의 군영을 진어영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 5월 경기도 이속(移屬)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동북지방의 요충지로서 춘천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진어사를 오히려 유수 겸 진어사(留守兼鎭禦使)로 승격, 경기도와 강원도지방의 부근 여러 읍을 4도(都)의 예에 따라 소속시켜 관할하도록 하는 등 그 기능을 강화시켰다.
1888년 10월 재정강화와 관련하여 화폐의 주전(鑄錢)을 인정하고 여기서 주전된 화폐를 통용하도록 하였다. 1894년 3월 친군진어영(親軍鎭禦營)이라고 개칭하였다가, 1895년 지방제도와 지방관제의 개편에 따라 진어사와 함께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