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효시가 되었던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초조(初祖) 도의국사(道義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도의는 784년(선덕왕 5)에 당나라로 가서 서당지장(西堂智藏)의 선법(禪法)을 이어받고 821년(헌덕왕 13)에 귀국하여 설법하였으나, 사람들이 교종만을 숭상하던 때였으므로 선법을 익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곳에 들어와서 40년 동안 수도하다가 입적하였으며, 그의 선법은 제자 염거(廉居)와 손상좌 체징(體澄)에 의하여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 중기의 일연(一然)이 진전사의 장로(長老)였던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었던 것으로 보아 그 당시까지는 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 절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 이후에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절터에는 1966년 국보로 지정된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1기와 같은 해 보물로 지정된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이 있으며, 절터는 ‘양양 진전사지’라는 명칭으로 1982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강원문화재연구소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절터를 발굴하여, 사역(寺域)은 계단․중문.누각터를 포함한 남쪽 축대지역, 법당과 7채의 건물터가 드러난 지역, 선방터가 보이는 북쪽 축대지역 등으로 구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2005년부터 진전사를 복원하기 시작하여 적광보전(寂光寶殿)과 요사채를 건립하였으며 2019년 현재까지 복원불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