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거경(居敬). 호는 일계(逸溪). 함창 출생. 채신보(蔡申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국공신(靖國功臣) 지중추부사 채수(蔡壽)이고, 아버지는 전생참봉(典牲參奉) 채윤권(蔡胤權)이며, 어머니는 부림군(富林君)이식(李湜)의 딸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이 되었다. 그 당시 고모부인 김안로(金安老)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김안로는 그가 대과에 급제하면 자기에게 방해될 것을 두려워하여 대간들을 사주하여 그를 진우(陳宇)의 일당으로 몰아서 1534년 남해로 귀양을 가게 하였다.
김안로가 실각한 뒤인 1537년 귀양에서 풀려나, 154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정언·좌랑을 지냈다. 1544년 부안현감으로 있을 때 중종이 사망하였는데, 그림 재주에 뛰어난 그가 선화(善畵)로 천거되어 왕명을 받고 선왕인 중종의 화상을 그려 바쳤다.
이로써 이조정랑에서 헌납이 되었고, 왕명을 받아 간의(簡儀)를 수리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 기술이 너무나 뛰어나므로 탄복하였다. 경사(經史)와 역(易)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서화·음률·의학·복서(卜筮)에도 뛰어나 명성이 높았다.
특히 중종대에 선비로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풀벌레그림에는 가장 저명하였다. 벼슬이 한성서윤에 이르렀다. 함창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