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선견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희릉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명보(明甫)
양전헌(兩傳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인천(仁川)
주요 관직
희릉참봉
관련 사건
이괄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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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희릉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명보(明甫). 호는 양전헌(兩傳軒). 아버지는 채응린(蔡應麟)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정구(鄭逑)와 조호익(曺好益)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호를 양전헌이라고 하였다. 진사 출신으로 참봉을 지냈다.

광해군 때에 영남유생들과 함께 이이첨(李爾瞻)의 주참(誅斬)을 청하는 소를 직접 작성하여 올렸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전 현감 이종문(李宗文)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토벌에 참여하기 전에 난이 평정되어 모은 군량을 나라에 헌납하였다.

그 뒤 이이첨의 여당 오적(五賊)을 참하기를 청하는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조정에서는 이와 같은 그의 절의를 가상하게 여겨 희릉참봉(禧陵參奉)에 제수하였다.

참고문헌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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