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朴殷植)이 지은 연개소문(淵蓋蘇文)에 관한 창작 전기. 작자가 1911년 국내를 탈출하여 서간도에 머물 때 쓴 것으로 처음 프린트판으로 출간되었으며, 현재 ≪박은식전서≫에 영인되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일본 강점 이후에 저작되었으나 내용과 형식면에서 한말 애국계몽기에 많이 나타났던 창작 전기류와 유사하다.
작자는 서론에서 조선조 500년간 유림과 귀족들이 영웅에 냉담하였음을 한탄하면서 천개소문의 행적을 널리 알려 당대에 그와 같은 영웅혼의 부활을 기대하는 영웅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천개소문의 유년 시절부터 죽음까지 그의 일생을 9장에 나누어 묘사하고 결론에서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제1장에서는 천개소문은 고구려 영류왕 때 사람으로 어려서 중원을 차지할 뜻을 품었으나 이세민(李世民)이 제왕의 기가 있음을 알고 고국에 돌아온다.
제2장에서는 천개소문은 당시 고구려의 권력을 장악하였던 십부대인과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운 뒤 자신이 막리지가 되어 군국(軍國)대권을 잡는다.
제3장은 당제 이세민이 병사 30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입한다. 제4장은 안시성주(安市城主) 양만춘(楊萬春)의 지략과 용맹으로 당태종이 끝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채 눈에 활을 맞고 회군한다.
제5장은 당나라가 수차 고구려 정벌을 시도하나 실패한다. 제6장은 천개소문이 거란, 나당연합군과 싸워 승리한다. 제7장은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 등이 재차 침입하였으나 역시 패전하여 귀환하고, 당나라 사람들은 “천개소문이 있는 한 고구려를 감히 넘보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제8장에서는 천개소문은 유불(儒佛)이 도래한 이후 선교(仙敎)가 끊어진 것을 염려하여 도가자류(道家者流)를 불러 강론하게 한다. 제9장은 천개소문이 죽자 고구려는 망한다.
결론에서는 천개소문이 독립과 자주를 외친 자임을 칭찬하고 그와 같은 영웅이 태어나 나라의 어려움을 풀어줄 것을 기대하는 소망을 피력하였다.
이 작품에 나타난 목차와 소제목의 설정은 애국계몽기의 창작 전기류에 공통된 형식이며, 이들 전기류가 한문 전(傳)의 형태를 가진 것으로 볼 때 결론 부분은 사찬(史贊)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삼국사기≫·≪당서 唐書≫ 등 양국의 정사뿐만 아니라 <규염객전 虯髥客傳>·≪태평광기 太平廣記≫ 등 당·송의 소설·설화·야사 등의 자료를 모두 사용하여 천개소문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재구함으로써 근대 역사소설에 접근하고 있다.
신채호(申采浩)는 ‘연개소문을 천개소문이라하고 규염객이 이세민 때문에 왕권 쟁탈을 포기하였다는 것’ 등을 들어 작자가 중국의 왜곡된 자료를 사용하였음을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