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소양강변에 한 단 높게 퇴적된 사질토의 대지 위에 고인돌 · 돌무지무덤[積石塚] 등의 무덤군이 강과 병행하여 분포되어 있다.
이 유적은 1915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북방식 고인돌과 돌무지무덤 1기가 조사됨으로써 알려졌다. 그 뒤 1931년 일본인 교사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바 있다. 이후 1966년 8월과 1967년 4월에 걸쳐 국립박물관 조사반이 다시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은 모두 4기가 조사되었는데 2기는 북방식이고 2기는 남방식이었다. 북방식 고인돌 중 제2호 고인돌은 주위에 돌무지가 형성되어 특이하다.
이 외부 돌무지는 봉분처럼 고인돌 전체를 덮고 돌무지무덤의 형태를 이룬 것으로 믿어진다. 이 고인돌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고분으로 개조,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남방식 고인돌은 하부구조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출토유물로는 간돌화살촉[磨製石鏃], 대롱옥[管玉], 이당형(珥璫形) 석제품, 민무늬토기조각 등이 있다. 제2호 고인돌 주위에서는 개조된 신라고분의 부장품으로 굽다리접시[高杯] · 배형토기(杯形土器) 및 철제가위 등이 발견되었다.
돌무지무덤은 3기가 조사되었는데 청동기시대 돌무지무덤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돌무지는 대체로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이 돌무지 중심부에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판석으로 짠 소형 돌널[石棺]들을 배치하였다.
C호 돌무지무덤의 매장시설은 돌무지로 된 돌널로서, 출토유물로는 벽옥제(璧玉製) 대롱옥, 간돌화살촉, 민무늬토기조각 등이 있다. 이러한 돌무지무덤은 남만주 요동지방에도 있으며 모두 고구려 돌무지무덤과 비슷하다.
이 천전리 유적의 연대는 청동기시대 중기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고인돌과 돌무지무덤의 관계 및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의 관계 등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