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은 1992년 국립청주박물관의 미호천유역 지표조사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다락리 강내초등학교 서쪽에 남북방향으로 형성된 해발 60m 내외의 야산 능선을 따라 분포하고 있다. 이 야산은 미호천변의 충적지와 접해 있어 미호천을 바라다 볼 수 있는 위치이며 경사면은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1993년 농로확장 및 토석채취공사로 인해 지상에 노출된 지석묘의 상석(上石) 1기가 유실될 위기에 처해, 국립청주박물관이 이를 긴급수습 발굴 조사하였다. 그러나 뚜렷한 하부구조를 확인하지 못했다.
1996년 국립청주박물관은 경부고속철도건설구간에 대한 발굴 예비조사를 하게 되었다. 조사 결과, 1993년도의 조사지점으로부터 불과 10여 m 떨어진 구릉 위쪽의 절개면에서 지석묘의 하부구조로 판단되는 파괴된 석곽을 확인했고, 여기서 간돌검이 1점 출토되었다. 따라서 1993년도에 조사된 상석은 이 석곽에서 굴러 이동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풍화암반을 파낸 묘광 바닥에 니질(泥質)점토를 깔고 할석으로 보강한 수혈의 석곽구조가 밝혀져,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묘제 연구에 좋은 단서를 제공하게 되었다.
특히, 여기서 출토된 간돌검은 일단병식(一段柄式)의 검신이 짧은 형태로서 일반적인 석검과 달리, 검신(劍身)과 병부(柄部)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검코가 없는 형식을 보여 주목된다.
이 밖에도 경부고속철도건설구간에 대한 최근의 발굴조사를 통해 이 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석곽과 수혈주거지들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여기서 간돌검, 민무늬토기 등 많은 자료들이 출토되고 있다.
같은 구릉상에서 지석묘와 주거지가 나타나 이들의 상호관계가 주목된다. 이는 미호천유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상의 일단을 보여 주는 좋은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