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37㎝, 밑지름 8.9㎝. 간송미술관 소장. 정병은 원래 중국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고려시대에 가장 세련된 형태의 정병이 만들어져 청자는 물론 청동기로 제작된 여러 우수한 작품들이 전해온다.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권31 기명2 정병조에 보면, 귀인(貴人)·국관(國官)·관사(觀寺)·민사(民舍) 모두가 정병을 쓰며 물을 담는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불교에서는비구(比丘)가 지녀야 하는 18물 중의 하나로서 정병을 들고 있다. 해인사 보물대장의 관욕기(灌浴器)라고 한 기명조항에 정병에 관한 설명이 있고 실제로 은입사(銀入絲)된 아름다운 정병이 보관되어 있어, 정병은 고려시대부터 불사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병이라는 명칭은 원래 정수(淨水)를 담는 여러 형태의 물병을 모두 포함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긴 목에 나팔 모양의 주구(注口)가 달려 있고 타원형의 몸체에 굽이 달린 형태의 병만을 정병이라 통칭하는 것은 아마도 사찰에서 주로 사용된 정수병이 대부분 이러한 형태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정병은 목과 어깨의 선이 부드럽고 주구(注口)의 뚜껑은 없어진 상태이나 세련된 형태를 보인다. 문양은 모두 백상감 기법으로 평화로운 연못가의 정경이 회화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청자 상감기법과 청동기의 은입사기법의 연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이 정병처럼 단색으로 이루어진 상감기법은 초기 상감청자의 한 가지 특징이다. 이 정병은 유태(釉胎)가 정선되고 유빙렬이 거의 없는 초기 상감청자의 하나이다. 유약은 옅은 녹회청색이며 맑고 고르게 시유되었으며, 굽 밑에 규석(硅石) 조각을 받쳐 구웠다. 전라남도 강진의 청자 가마터에서 이와 비슷한 파편이 수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