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법화종에 속한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예로부터 관세음보살의 현신설화(現身說話)가 많은 곳이고, 세조에 의하여 중창된 사찰이다. 1457년(세조 3) 왕이 상원사(上院寺)에 들렀을 때 흰 옷을 입은 노인이 세조 앞에 나타나 동대(東臺) 동쪽 기슭의 50리쯤 되는 곳에 청학사가 있고, 매일 새벽 그곳에서 32응신(應身)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고 있으나, 현재 그 절이 퇴락했으니 왕이 그곳을 중창하여 불법(佛法)의 홍포(弘布)에 도움이 되게 해 달라고 현몽하였다. 세조는 즉시 사람을 보내 그 암자를 조사하게 한 뒤 절을 중창하도록 하였다. 그 뒤 1753년(영조 29)에 설화(雪華) · 신극(信剋) · 사주(司珠) 등이 법당을 중건하기 위하여 모연문(募緣文)을 쓰기까지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757년에 해정(海淨) · 승철(勝哲) 등이 누각과 요사를 지었다. 1763년 옛 건물의 지붕과 구들을 다시 놓았고, 부처와 용상(龍像)을 새로 그려 모셨으며, 1765년 덕잠(德岑) 등이 법당을 단청하였다. 그러나 1783년(정조 7) 겨울에 원인 모를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터만 남았던 것을 최근에 옛터 근처에 다시 작은 절을 창건하였다.
문화유산으로는 2007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석조관음보살상및복장유물을 비롯하여 2007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청동불입상・2007년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청동보살입상・2011년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석불좌상・광배(光背) 및 중대석 등이 있다. 이중 청동 불입상과 보살입상 및 석불좌상・광배 및 중대석 등은 청학사 근처의 흑암사(黑岩寺) 터에서 발견되어 옮겨온 것으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 주위에는 많은 경승지가 있다. 용담화상(龍潭和尙)이 창건한 묘련암(妙蓮庵) 옆에는 용담이라는 못이 있고, 못 안에는 용화굴(龍華窟)이 있어 신룡(神龍)이 출몰했다고 하며, 못 위로 허물어진 성터가 있는데 신라왕족이 쌓은 피난처였다고 전한다. 성터의 5리 아래에는 백마봉(白馬峰)과 백운암(白雲庵)이 있는데, 백마봉은 청학이 노니는 곳이고 신선이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청학사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