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마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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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개념
고려 때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세곡 운반에 사용된 조운선(漕運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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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때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세곡 운반에 사용된 조운선(漕運船).
내용

고려는 초기부터 남도수군(南道水郡)에 아산의 하양창(河陽倉), 서산의 영풍창(永豊倉), 부안의 안흥창(安興倉), 임피(臨陂)의 진성창(鎭成倉), 나주의 해릉창(海陵倉), 영광의 부용창(芙蓉倉), 영암의 장흥창(長興倉), 순천의 해룡창(海龍倉), 사천의 통양창(通陽倉), 창원의 석두창(石頭倉) 등 10개 조창(漕倉)과 내륙에 충주의 덕흥창(德興倉), 원주의 흥원창(興元倉) 등 2개 조창과 황해도 장연현에 안란창(安瀾倉)을 두어 수로를 이용하여 세곡을 경창(京倉)으로 날라오도록 하였는데, 정종(靖宗) 때에 각 조창에 필요한 조선의 수를 정하고, 하양·영풍·안흥·진성·해릉·부용·장흥·해룡·통양·석두 등 바다를 통하여 조운을 하는 10개 조창에는 1,000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을 각각 6척씩 배정하였다.

초마선의 자세한 구조와 명칭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한때 조운선으로 쓰여지고, 그 명칭도 ‘馬’자 대신에 ‘嗎, 麻, 亇’ 등 글자로 ‘哨嗎船, 哨麻船, 哨亇船’ 등으로 쓰여진 점으로 보아 그 글자에 특별한 뜻은 없는 듯하다.

병조선(兵漕船)이 개발되고, 맹선(猛船)의 제도가 확립되어 조운이 그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세조 이후에 초마선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한국선박사연구』(김재근, 서울대학교출판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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