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영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수원에 설치되었던 군영.
목차
정의
조선 후기 수원에 설치되었던 군영.
내용

장용외영(壯勇外營)의 후신이다. 조선 후기에 정조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장용영을 설치하고, 1793년(정조 17) 1월에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륭원(顯隆園)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원에 화성(華城)을 축조하는 동시에 장용외영을 설치하여 방어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승하하자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면서 1802년(순조 2) 1월에 장용영도 혁파되었는데, 이때 장용외영도 그 규모를 대폭 축소하여 총리영을 수원에 두고 화성의 관리·방어를 담당하게 하였다.

관원으로는 사(使 : 수원유수가 겸임) 1인, 중군(中軍) 1인, 종사관(從事官 : 수원판관 겸임) 1인, 별효장(別驍將) 2인, 파총(把摠 : 진위·용인·안산·과천·시흥의 수령과 평신첨사가 예겸, 이 밖에 6인은 무관을 지낸 자 중에서 차출) 12인, 척후장(斥堠將 : 영화도찰방이 겸임) 1인, 초관(哨官) 25인, 교련관(敎鍊官) 8인, 지구관(知彀官) 10인, 별군관(別軍官) 100인, 수첩군관(守堞軍官) 12인, 별효사(別驍士) 200인으로 편제되었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대전회통(大典會通)』
『한국군제사(韓國軍制史)』-근세조선후기편(近世朝鮮後期篇)-(육군본부, 한국군사연구실, 1972)
집필자
차문섭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