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방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검교사공추밀원사, 상서좌복야 판삼사사 주국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복시(復時)
시호
화순(和順)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045년(정종 11)
사망 연도
1116년(예종 11)
본관
수주(水州, 지금의 경기도 수원)
주요 관직
어사대부(御史大夫)|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판삼사사(判三司事)|주국(柱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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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에, 검교사공추밀원사, 상서좌복야 판삼사사 주국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수주(水州: 지금의 경기도 수원). 자는 복시(復時). 시중 최사위(崔士威)의 증손으로 호부시랑 최유서(崔惟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중추원사 김원황(金元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 성균시에 실패하였으나 왕훈(王勳: 順宗)의 태자부(太子府)에 입시한 뒤 줄곧 근직(近職)에 있었다.

명의태후와의 인척관계로 숙종·예종의 총애를 받았다. 1103년(숙종 8) 사신으로 요(遼)나라에 다녀왔으며, 1109년(예종 4) 어사대부(御史大夫)로서 간의(諫議) 이재(李載)·김연(金緣)과 함께 여진족에 대한 윤관(尹瓘)·오연총(吳延寵)·임언(林彦)의 패사죄(敗事罪)를 다스리도록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111년 호부상서 겸 삼사사(戶部尙書兼三司使)를 거쳐 이듬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검교사공추밀원사(檢校司空樞密院使)를 역임하였다. 1113년 수사공 병부상서 참지정사(守司空兵部尙書參知政事)가 되고 곧 상서좌복야 판삼사사 주국(尙書左僕射判三司事柱國)에 올라 치사하였다. 시호는 화순(和順)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한국중세사회사연구』(이수건, 일조각, 1984)
『한국금석문추보』(이난영, 중앙대학교출판부, 1968)
「고려시대 수주최씨가문 분석」(박용운, 『사총』26,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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