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할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최당(崔讜)이며, 아버지는 상서 최신윤(崔臣胤)이다.
성격이 호탕하여 술과 놀이를 좋아하다가 30세에 이르러서야 과거에 급제하였다. 대간(臺諫)을 거쳐 고종(高宗) 때 나주부사(羅州副使)로 나갔다. 이때 원율(原栗: 현재 전라남도 담양)의 이연년(李延年)이 자칭 백적도원수(百賊都元帥)라 일컫고 주군(州郡)을 침구(侵寇)하므로 지휘사(指揮使) 김경손(金慶孫)과 함께 이연년을 격파하고 그 공으로 우부승선(右副承宣)에 특진(特進)되었다. 뒤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추밀원사(樞密院使),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이 격화되자 고려에서는 왕자인 안경공 왕창(安慶公 王淐)을 원나라에 보내어 군대철수를 청하자고 하였는데 고종이 윤허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린(崔璘)은 이를 끝까지 주장하여 설득시키고 원나라 사행을 수행하였다.
이에 앞서 왕족인 왕준(王綧)을 영녕공(永寧公)에 봉하여 애자(愛子)라고 속여 원나라에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연경(燕京: 현재 중국의 베이징)에 있던 민칭(閔偁)이라는 자가 왕준은 친왕자(親王子)가 아니라고 하여 문제가 발생됐다. 이때 최린이 애자란 아들과 같이 사랑한다는 뜻임을 설명함과 동시에 아들이 아님을 적절히 변명하여 양국 간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금의(琴儀)의 문하생으로 동문 중에 현달한 사람이 많았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