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순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통의부의용군 중대장, 참의부 참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백순(白淳)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925년 2월 25일
출생지
평안북도 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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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통의부의용군 중대장, 참의부 참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삭주 출신. 호는 백순(白淳). 1919년 남만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해 집안현(輯安縣) 지단장(支團長)으로 선임되었다.

1922년 8월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각 단체들이 통합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하고 그 군사조직으로 대한통의부의용군(大韓統義府義勇軍)을 편성하였을 때, 제2중대장을 맡았다.

제2중대는 대한독립단의 중요 임원들이 급진적인 독립전쟁론을 주장하는 청년들을 모아 편성한 부대로 환인현(桓仁縣) 대아하(大雅河)에 군영을 두고 활동하였다. 그 중대는 많을 때는 독립군의 숫자가 600∼700명에 달하였다.

대한통의부에서 공화(共和)와 복벽(復辟)이라는 이념과 항일전술에 대한 차이로 분기가 일어나자, 통의부와 의군부의 대립을 타파할 방향으로 임시정부와의 제휴를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상해 임시정부의 협력을 얻어 1924년 6월 26일 정식 인준을 받고 그 명칭을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義府)라 하였다.

참의부는 군사와 민정(民政)을 아울러 통할하는 조직이었다. 창설 당시 제2중대장에 임명되었고, 1924년 참의장 채찬(蔡燦)이 백병준, 백세우 등에게 살해된 뒤, 참의장(參義長)에 선임되었다.

압록강 대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제2중대 대원들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초산 등에 침투하여 일제 경찰서 파괴 및 밀정을 처단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25년 2월 하순 집안현 고마령(古馬嶺)에서 육군주만참의부 간부들이 모여 국내진입작전을 위한 군정회의(軍政會議)를 개최하던 중, 초산경찰서에서 출동한 일제 경찰의 급습을 받았다.

이에 소대장 최항신(崔恒信) 등과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육탄전을 벌이는 등 4시간 남짓 동안 결사적으로 항전하였으나, 회의에 참여한 22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는 남만주지역 독립군 항전사에서 최대의 참변으로 알려져 있다.

동생 최석준(崔錫濬)도 독립군과 연락하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의주경찰서에서 악형(惡刑)으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국외한인사회와 민족운동』(윤병석, 일조각, 1990)
『독립운동사자료집』1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참의부의 ‘법명’ 개정과 상해 임시정부」(윤대원, 『한국독립운동사연구』제44집, 2013)
집필자
한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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