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 출신. 1908년 김상태(金相泰)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중, 1909년 8월 경상북도 봉화에서 밀정의 신고로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일본군 수비대에 감금되었다가 탈출, 이 후 소백산을 중심으로 봉화 예천 등지에서 일본군 밀정의 처단 및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규모는 일제가 편찬한 『조선폭도토벌지(朝鮮暴徒討伐誌)』에 의하면 약 3백 명 정도로 나타나 있다. 1910년 초부터 일본군이 소백산 지역에 대한 토벌을 실시하자, 부하 20여 명을 이끌고 일제의 포위망을 벗어나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0년 4월 한명선(韓明善)과 함께 일본군에 또다시 체포되었다. 같은 해 9월 대구지방 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