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과거에 급제하여, 울주통판(蔚州通判)을 거쳐 익양부(翼陽府)의 전첨(典籤)으로 있을 때에 익양공(翼陽公: 명종)이 왕위에 오르는 꿈을 꾸고 예언하였는데, 뒤에 명종이 즉위하자 그 인연으로 나주판관(羅州判官)에서 좌정언지제고(左正言知制誥)에 제수되었다.
이어 시어사 보문각대제(侍御史寶文閣待制)를 역임하였다. 1176년(명종 6) 간의대부국자좨주(諫議大夫國子祭酒)로서 감시(監試)를 주관하여 시(詩)·부(賦)로 이진승(李晉升) 등 8인과 십운시(十韻詩)로 정세준(鄭世俊) 등 38인, 그리고 명경(明經) 1인을 뽑았다.
77세에 추밀원사좌산기상시(樞密院使左散騎常侍)가 되고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