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충주(忠州). 문하시랑(門下侍郎) 최옥(崔沃)의 아들이다.
충주의 향리(鄕吏)로,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진례현위(進禮縣尉)가 되었다. 명종의 잠저(潛邸) 때 익양부(翼陽府) 전첨(典籤)을 역임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구료(舊僚)로 총임(寵任)되어 대간직(臺諫職)에 있었다.
1174년(명종 4) 병마부사(兵馬副使)로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국자좨주(國子祭酒)를 거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발탁되어 1177년 고시관(考試官)을 맡아 시부(詩賦)로 박돈장(朴敦章) 등과 10운시(十韻詩)로 김각장(金角章) 등을 선발하였다.
이 해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킨 정주도령(靜州都領) 순부(純夫)와 낭장 김숭(金崇)을 참살한 공으로 판위위사(判尉衛事)에 승진되었다. 1180년 추밀원사 태자빈객(樞密院使太子賓客)을 거쳐 이듬해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가 되었다. 72세에 퇴관을 요청하였으나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를 가하여 치사(致仕)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