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자앙(子昻).
1450년(세종 32) 무과에 급제하여 고성현령·의금부진무(義禁府鎭撫) 등을 역임하고, 1455년(세조 1) 사직(司直)으로서 세조 즉위에 공이 있어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1464년 중추원부사로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전라도처치사로 나갔으나 앞서 명나라에 갔을 때 사무역(私貿易)을 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고신(告身)을 박탈당하고 외방으로 부처되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공현위장(控弦衛將)이 되어 충청도병 1,000명을 이끌고 석장현(石場峴)싸움에서 적장 김말손(金末孫)을 사로잡는 등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녹훈되고 오위장에 임명되는 동시에 수성군(隋城君)에 봉하여졌다. 그 해 겨울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안양(安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