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자유(子有). 호는 간호(艮湖). 최영(崔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상중(崔尙重)이고, 아버지는 좌윤 최연(崔葕)이며, 계부(季父) 승지 최온(崔薀)에게 입양되었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하여 1639년 종묘직장(宗廟直長)이 되었다. 1642년 승문원정자가 되어 재직 중 164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56년(효종 7) 병조좌랑, 이듬해 김제군수, 1661년(현종 2) 사헌부장령이 되었고, 이듬해 집의로 승진하였으며 옥당(玉堂)의 신록(新錄)에 올랐다.
그 해 어머니의 병환으로 남원에 내려와 있으면서 기근으로 백성들이 겪고 있는 참상과 당국에서 진제곡(賑濟穀)을 지급하지 않아 희생자가 더욱 많다는 현지 사정을 상소하였다. 1663년 집의가 되었으며, 1660년 홍문관교리에 이어 사간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