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년(인종 13) 묘청(妙淸)의 난 때에 김부식(金富軾)이 서경을 점령한 뒤 성내 우순검사로 활약하였다. 1142년 천추사(千秋使)로 금나라에 다녀왔으며, 1147년(의종 1) 어사잡단(御史雜端)을 거쳐 직문하성(直門下省), 상서우승(尙書右丞)을 역임하였다.
1155년 대부경(大府卿)으로 서북면병마사가 되고, 이듬해 내시전중감(內侍殿中監), 1157년 승선, 1161년 추밀원부사, 이듬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를 거쳐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가 되었다.
이어 지추밀원사 판삼사사(知樞密院事判三司事)가 되어 권세가 중외(中外)에 떨치자 아부하지 않는 자를 모략하고 아들·사위를 모두 요직에 앉혔다. 1163년 좌정언 문극겸(文克謙)의 탄핵을 받고도 왕의 두둔으로 무사하였다.
이어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거쳐 1164년 상서좌복야 참지정사(尙書左僕射參知政事)·판병부사 태자태부(判兵部事太子太傅)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守太保判尙書吏部事)에 이르러 병으로 치사하였다. 1170년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