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동림(東林). 최제호(崔齊灝)의 아들로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1917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관비로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廣島高等師範學校]로 유학을 갔다가 다시 1922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이학부 수학과를 다녔다.
귀국 후 경성고등공업학교와 경성광산전문학교의 교수를 지냈으며, 광복 후 광산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다가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 수학과의 초대주임교수가 되었으며, 건국 후 1년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1946년 조선수학물리학회 초대회장, 1954년에는 대한수학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1956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수학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체계적인 수학을 도입하는 한편, 초창기 수학계의 발판을 굳히는 데 지도적인 구실을 하였다.
또, 학자로서 고전적인 해석학(解析學)을 전공하였으며, 정수론(整數論)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한편, 1954년 이승만의 삼선출마를 위한 개헌 과정에서 사사오입에 관한 수학적 자문을 해주었다는 의혹을 받기도 하였다.
주요논문으로는 「다중푸리에 급수의 총합법에 관한 연구」와 「메르누이수에 관한 연구」가 있고, 이밖에도 『대수학』·『미분방정식론』·『입체해석기하학』·『구면삼각법』·『고급해석학』 등의 많은 대학교재를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