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산청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최재득(崔載得)이다.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도쿄(東京)의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에 유학하고 1938년에 졸업했다.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거듭 입선하였고, 일본에 머무르며 니카텐(二科展), 신제작파전(新制作派展) 등에도 입선하였다.
1941년에는 역시 도쿄에서 이중섭(李仲燮), 이쾌대(李快大), 진환(陳瓛) 등과 새로운 미술을 지향한 ‘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고 도쿄와 서울에서 동인작품전을 가졌다. 당시 최재덕은 신선한 색채구사와 서정적 표현감각의 독특한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광복 후에는 좌익의 조선미술동맹 간부였다가 전향하여,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산」을 출품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다시 남침한 공산체제에 영합하다가 월북하였다. 북한에서는 「대동강」(1955), 「사과 따는 처녀」(1961) 등을 그렸다.
남한에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1941년의 제1회 신미술가협회 출품작인 「뜰」의 하반부를 1948년에 제거하여 「하얀 집의 테라스」로 화면을 변용시킨 것과 역시 그 해에 그린 「병꽃」, 그리고 「어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