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李承晩)과 함께 『ᄆᆡ일신문』의 편집인을 지내면서 독립협회에 가담, 활동하였다. 1898년 개최된 만민공동회에서 총대위원(總代委員)으로서 수천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정교(鄭喬) 등과 함께 이용익(李容翊) 등 수구파 대신의 처벌과 국정의 개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독립협회를 해산하려는 정부의 의도로 만민공동회 주도인물이 검거되자 정부를 능멸하고 황제를 핍박하였다는 죄목으로 잡혀 투옥되었다. 이듬해 미결수로 있던 중 이승만·서상대(徐相大) 등과 탈옥을 계획하였다.
미국인의 후원으로 옥중에서 비교적 활동이 자유로웠던 이승만이 학우(學友)이던 주시경(周時經)에게 탈옥계획을 밝히자 주시경은 최정식 집의 식객(食客)이던 최학주(崔鶴周)를 통하여 육혈포(六穴砲) 2정을 옥중으로 비밀리에 들여 보냈다.
이 육혈포를 가지고 이승만·서상대와 함께 탈옥하였는데, 이때 따라오던 감옥서(監獄署) 압뢰(押牢) 김윤길(金允吉)을 쏘아 상해를 입히고 도주하였다. 이승만은 곧바로 시위대(侍衛隊)에 붙잡혀 재투옥되었고 최정식은 서상대와 함께 일단 배재학당 구내로 도피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뒤 서상대는 완전 탈옥에 성공하였고, 최정식은 외국여자로 변장하여 영국 여자 두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배재학당을 나와 일본으로 탈출하려다가 삼화부(三和府: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 증남포(甑南浦)에서 관헌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 탈옥주범과 총을 쏘아 사람을 해친 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