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최충(崔冲)의 후손이며, 최사추(崔思諏)의 아들이다.
1137년(인종 15) 좌산기상시 추밀원부사 태자빈객(左散騎常侍樞密院副使太子賓客)을 거쳐 이듬해 병부상서 지추밀원사(兵部尙書知樞密院事)가 되었다. 1139년 참지정사(參知政事), 이듬해 우복야 판형부사(右僕射判刑部事)를 역임하였다.
이해 김부식(金富軾) 등과 함께 시폐(時弊)의 시정책을 상소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141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1144년 태자태부(太子太傅)를 거쳐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에 올랐다. 1159년(의종 13) 곽정동(霍井洞) 집에 의종이 일시 이어(移御)한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