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극수(克修), 호는 죽당(竹塘). 아버지는 군수 최기변(崔琦抃)이다.
1630년(인조 8) 무과에 급제,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싸우다가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심양(瀋陽)에 볼모로 가는 데 배종(陪從)하였다.
1645년 돌아와 죽산부사가 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속리산에 은거, 벼슬을 버린 죄로 남양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재자관(齎咨官)으로 청나라에 들어가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청나라 오랑캐에게 칭신(稱臣)할 수 없다면서 벼슬을 사퇴하려 하였다.
임금의 간곡한 당부로 부득이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옥하관(玉河關)에서 병사하였다. 평소 자손에게, 자신이 죽은 뒤 묘비에 청나라 이후의 관직을 새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우부승지에 증직, 인계서원(仁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