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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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인물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귀국하여 육군 준장을 역임하고 은성교회를 설립한 목사 · 군인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5년
사망 연도
1977년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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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귀국하여 육군 준장을 역임하고 은성교회를 설립한 목사 · 군인 · 독립운동가.
내용

평안북도 선천 출신. 어려서 만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으며 1923년부터 만주 화흥학교(化興學校) 교사로 있으면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1924년 항일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참여하였고 1927년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개신교에 입교하여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귀국하였으며, 1935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8월 평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37년 장로회 총회에서 만주선교를 결의하였을 때 선교사로 임명되어 길림성(吉林省) 쌍양현(雙陽縣)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하여, 남만주지역 선교에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

광복 후 귀국하여 1948년 육군사관학교 특별 7기로 임관되어, 196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감찰활동 및 군종업무 지원활동을 하였다. 예편 후 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장을 역임하고 은성교회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신앙활동을 하였다.

참고문헌

『평안북도지(平安北道誌)』(평안북도지편찬위원회, 1973)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 하』(김승학편, 독립문화사,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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