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3수. 1569년(선조 2) 작자가 77세 때 우참찬벼슬을 그만두고 담양으로 내려갈 때의 심정을 곡진하게 노래하였다. 작자의 문집 『면앙집(俛仰集)』 권4 잡저에 한역으로 수록되어 있다.
첫째수는 각종 가집(歌集)에 작자 미상으로 전하고 있어 확인이 가능하나 나머지 2수는 작품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첫째수의 작품을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늙었다 물러가자 마음과 의논하니/이 님 버리고 어드러로 가잔 말인고/마음아 널랑은 있거라 몸만 먼져 가리라.” 50년간 임금을 모시고 벼슬살이를 하다가 나이가 늙어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떠나고자 결심을 하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노신하의 충정어린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몸은 떠나야 하고 마음은 임금 곁을 떠날 수 없는 작자의 심정을 종장에서 이원화하는 기지로 드러낸 표현이 돋보인다. 둘째수와 셋째수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임자없는 강산이오 값없은 풍월이라/이몸 하나거니 어드러로 못떠나료/매양에 가지 못하고 오늘내일 하느니”, “가노라 이똥공명 시비(是非)도 많고많다/어디론 강산인들 오지말라 할까마는/떨치고 가지 못하고 드명나명 망설이뇨.” 치사의 심정이 여기에서도 절실하게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