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창작동기만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다.
눌지왕 때 박제상(朴堤上)이 왜국에 사신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자, 그 처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리워하다가, 세 딸을 거느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어 치술령 신모(神母) 또는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그녀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고 하는 점에서, 「치술령곡」은 후세인들이 앞의 이야기를 소재로 지어 그녀에게 제사를 지낼 때 바친 제의가(祭儀歌)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용과 형식은 파악할 수 없으나, 제의가의 성격으로 보아 찬양이나 위로의 내용이었으리라 추측된다. 후대에 김종직(金宗直)이 이것을 소재로 하여 「치술령곡」이라는 한시를 짓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