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定州: 지금의 함경남도 정평) 출신이다. 1258년(고종 45) 몽고의 산길대왕(散吉大王) 등이 침입해오자, 저도(楮島)에 피난한 주민들을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신집평(愼執平)이 강제로 죽도(竹島)에 옮긴 틈을 타서 용진인(龍津人) 조휘(趙暉)와 함께 철령(鐵嶺) 이북의 땅을 들어 몽고에 항부(降附)하였다. 그리고 몽고가 화주(和州: 지금의 함경남도 영흥)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자, 천호(千戶)에 임명되어 총관 조휘와 함께 이곳을 통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