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관직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문종 때에 1인을 두고 품계는 정1품으로 정하였다는 기록이 처음 보이고 있다. 충렬왕대에 폐지되었다고 하는데, 원의 요구에 따라 1275년(충렬왕 원년)에 단행된 관제개편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공민왕 5년(1356)에 다시 설치되었다가 1362년에 폐지되었다. 반원개혁정치의 일환으로 단행된 문종 구제 복원 차원에서 설치되었다가 이어지는 홍건적 침입을 계기로 한 관제개편 당시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삼사(三師 : 太師·太傅·太保)와 함께 고려시대 최고의 명예직이었던 삼공(三公 : 太尉·司徒·司空)의 하나로써 주기능은 왕의 고문역할이었다. 다른 삼사·삼공직과 마찬가지로 적임자 부재시에는 채우지 않은 채로 두었고 왕족에게 검교직(檢校職), 또는 수직(守職)으로 수여되기도 했다. → 삼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