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성계의 태는 원래 무학대사의 지시에 의해서 함경도 용연(龍淵)에 비장하였었는데,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른 후인 1393년(태조 2)에 이 곳(당시에는 전라도 完山郡 珍同縣 萬仞山)으로 옮겨서 안치하고 태실비(胎室碑)를 세웠다.
당시 태조의 태를 이 곳으로 안치할 때 태실증고사(胎室證考使)와 봉안사(奉安使)는 권중화(權仲和)였으며, 태실이 봉안된 후 진동현(珍同縣)은 지진주사(知珍州事)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태실의 관리는 관할구역 관리의 업무에 포함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태실을 고의로 훼손하거나 벌목 · 채석 · 개간 등을 하였을 때에는 국법에 의하여 엄벌하고 있었으므로, 태조 태실도 숙종 때 지역 주민이 함부로 경작하고 벌목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관리가 잘 되었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인 1928년에 조선총독부에서는 이 태실을 훼손하여 태 항아리를 창덕궁으로 옮겨갔고, 남아 있던 석비와 석조물도 토지 소유자가 헐어내고 자기 선조의 묘를 세웠었다. 현재의 태실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던 원래의 석조물을 수습하여 원래 위치에서 약 100m쯤 떨어진 곳에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