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순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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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에 투항한 일본인을 모아 조직한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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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에 투항한 일본인을 모아 조직한 군대.
내용

당시 영남과 호남지역에서 투항, 귀순하여오는 왜병에 대한 처리가 문제되었다. 이들을 집단적으로 수용하면 각종의 횡포가 심하였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투항한 왜군을 양계(兩界)의 심처(深處)에 나누어 관리하기도 하고, 내지(內地)에는 왜영(倭營)과 먼 곳에 나누어 두어 그들의 횡포를 막았다.

그러나 날로 왜병의 투항과 귀순이 늘어나자 국내에서 수용할 수 없어 중국으로 압송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왜군이 서울에서 철수하여 영남·호남지역에 진을 치고 있던 1594년에는 항왜가 46명이나 되었다.

조정에서는 겸선전관(兼宣傳官) 이영백(李榮白)을 파견하여 항왜를 인솔하고 상경하게 하였다. 상경한 항왜 가운데에서 검·조총·창·자염(煮焰 : 소금을 굽는 일) 등에 능한 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항왜에 대한 처리문제가 논의되었다.

그 해 9월 선조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당시 경기·양호(兩湖)지방에서 횡행하던 토적(土賊)을 토벌하는 데 항왜를 이용하도록 하였다. 선조는 항왜로 별대(別隊)를 만들고 이영백을 장수로 삼아 토적을 찾아내어 토벌하는 데 투입하도록 하고 그 이름을 투순군이라 하였다.

그러나 점차 투순군에 속할 수 있는 항왜가 줄어들어 불과 5, 6명밖에 없으니 그 수를 늘려야 한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들이 토적토벌에 활용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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