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이경록의 후손 이주후(李周厚)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최두영(崔斗永)의 발문이 있다.
6권 3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23수, 서(書) 28편, 권2에 서(書) 36편, 서(序) 4편, 권3에 기(記) 5편, 발(跋) 8편, 명(銘) 2편, 잡저 8편, 권4에 제문 20편, 축문 1편, 뇌사(誄辭) 5편, 뇌문(誄文) 5편, 권5에 행장 4편, 차록(箚錄) 2편, 권6에 부록으로 만(輓)·제문·가장(家狀)·가장보유(家狀補遺)·행장·묘지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친지들의 덕행을 기리고 우의를 간곡히 표현한 만시(輓詩)가 많다. 한편 「희청(喜晴)」과 「칠계체우(漆溪滯雨)」는 비온 뒤의 맑게 갠 전원의 경치를 담백하고 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서(書)는 대개 스승 및 친지들과 주고받은 안부 편지다. 이 가운데 「답정사앙(答鄭士仰)」은 귀신설(鬼神說)의 황당무계함을 비판하고 유교적인 측면에서 귀신의 이치를 밝혀 제사에서의 귀신의 흠격(欽格)을 논한 내용이다. 「답신자장체인(答申子長體仁)」은 신체인의 높은 학식과 인격이 모든 유림들의 모범이 됨을 칭송하고, 그에게 칠계의 스승으로 와 주기를 간곡히 청탁한 내용이다.
잡저 가운데 「북계서당취회절목(北溪書堂聚會節目)」은 원근의 선비들이 합심해서 허물어진 서당을 개축하여 미풍양속 진작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삼아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마을의 일을 의논하자는 취지에서 정한 절목이다. 「증변최사교심시기변조(增辨崔士敎心是氣辨條)」는 최사교가 심(心)을 단지 기(氣)라고만 한 것에 대한 반론이다. 심은 이(理)와 기가 합쳐진 것이고, 성(性)과 정(情)이 통합된 것으로, 몸의 주인이며 만사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변론한 글이다.
「우변이기조(又辨理氣條)」는 고명(高明)이 화(化)의 뜻이 신묘해 헤아리기 어렵다고 논한 사실에 대한 반론으로, 화는 기(氣)의 화로서 형하(形下)이며, 신묘불측(神妙不測)은 이(理)로서 형상(形上)임을 밝혔다. 「남행록(南行錄)」은 1789년(정조 13) 봄에 고령(孤嶺)에서 신안(新安)에 이르기까지 남해안 일대를 유람하면서 그곳의 승경과 여정을 기행문 형식으로 상세히 기록한 글이다. 「한거일기(閒居日記)」는 1775년(영조 51) 7월 27일부터 1789년 5월까지의 일기로,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독서차록(讀書箚錄)」은 독서하면서 느낀 점들을 수필 형식으로 간단히 기록한 글이다. 그밖에 「제안씨신본화병(題安氏新本畵屛)」은 선조 때 곽공(郭公)이라는 사람이 명나라의 신종(神宗)에게서 받은 10폭 병풍이 안씨 집에 있었는데, 그 병풍에 대해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