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18551895)은 동학에 들어가 최시형(18271898)의 문하에서 접장(接長)으로 활동했다.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 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그의 아버지가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죽음을 당한 것을 계기로, 사회 개혁의 큰 뜻을 품게 된 것으로 보인다.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을 일으켜 ‘녹두 장군’으로 불리며 한때 맹위를 떨쳤으나 관군(官軍)과 일본군의 무력에 패하여 그 이듬해에 처형되었다. 「파랑새요」를 동학 농민 혁명과 관련하여 해석할 경우 전봉준은 키가 작았다는 점에서 녹두 장군, 파랑새는 군복색과 관련지어 일본군, 청포 장수는 동학군을 지지한 당시 민중으로 볼 수 있다.
4음절 4음보 율격의 「파랑새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사설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들 중 몇 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새야 새야 포랑새야 녹뒤 낭케 앉지 마라/ 녹뒤 꽃이 떨어저마 청포 장사 울고 간다
위 인용문에서 화자(話者)는 파랑새가 녹두 꽃에 앉아 그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가 울고 가기 때문에 녹두 나무에 앉지 말라고 한다. 이는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조사되는 구성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유지하되 사설 형태가 바뀌는 자료들도 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 잎에 앉은 새야/녹두 잎이 깐딱하면 너 죽을 줄 왜 모르니
화자가 파랑새에게 녹두밭에 앉지 말라고 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그런데 이유는 청포 장수가 울고가는 것이 아닌, 파랑새가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랑새가 일본군임을 감안하면, 마지막 사설은 일본군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파랑새요」 중에는 기존 동요와 결합한 자료들도 조사되었다.
새야새야 포랑새야 녹두 가지 앉지마라/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간다/새야새야 포랑새야 발이 시려 어찌 자나/덤북 속에 자고 왔지
위 인용문의 전반부는 기존 자료와 동일하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파랑새의 의미가 일본군이 아닌, 일반적인 동요 속 파랑새이다. 이 노래 구연층이 아동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