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태종이 산천의 형편에 따라 10도를 정한 것을 본떠 995년(성종 14)에 지리적 조건을 고려해 10도를 정했을 때 후고구려의 궁예(弓裔)가 분정한 패서 13진(鎭)의 명칭을 따서 패서도를 설치하고 서경소관(西京所管)의 14주(州) 4현(縣) 7진(鎭)을 소속시켰다.
그러나『고려사』지리지 등에 의해 확인되는 주는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 영주(寧州)를 비롯해 방어사(防禦使)가 설치된 운주(雲州)·연주(延州)·박주(博州)·가주(嘉州)·무주(撫州)·순주(順州)·은주(殷州)·숙주(肅州)·자주(慈州)·태주(泰州) 등 11주와 서경유수(西京留守)가 있다. 패서도는 후일 북계(北界)가 되어 서북면(西北面)으로 이어진다.
패서도를 비롯한 10도의 성격에 관해서는 지방관제의 최고 단위이기는 하지만 행정구획이 아니고 다만 순찰 또는 감찰 구획에 불과하며 상주하는 도장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 도의 장관을 관찰사로 보고 관찰사가 관할구역을 순찰했다고 보는 설, 도의 장관을 전운사(轉運使)로 보고 도는 중앙정부와 주·군 사이의 행정구획이 아니라 조부전운(租賦轉運)의 방면을 표시하고 지방순찰의 구획으로서의 기능만을 가졌다는 설, 지방행정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주현의 외관들이라는 설, 절도사가 도의 장관으로서 도를 전제(專制)하고 출척을 행했다는 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