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윤부(潤夫), 호는 회와(悔窩). 한명길(韓命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치상(韓致相)이고, 아버지는 장령 한이원(韓以原)이며, 어머니는 홍성휴(洪聖休)의 딸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다.
1717년(숙종 4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725년(영조 1) 노론의 집권으로 정언이 되어 영조가 신임사화에 대해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을 때 무옥임을 주장하였다.
같은 해에 소를 올려 학문하는 방법으로 궁리(窮理)를 근본으로 삼을 것, 이간(李柬)·이이근(李頤根)·윤봉구(尹鳳九)·한원진(韓元震) 등의 뛰어난 학자들을 불러서 경연에 참석시킬 것, 윤선거(尹宣擧) 부자의 관직과 시호의 추삭 및 배향서원의 훼철을 숙종의 처분대로 할 것, 김제군수 양득중(梁得中)과 영광군수 황익재(黃翼再)를 파직할 것 등의 내용을 주장하였다.
12월에는 문학이 되어 해서어사로 파견되었고, 이듬해 정언을 거쳐 장령이 되었으며, 영조가 간관을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하자 파직되었다. 1733년 승지가 되었으며, 참찬관(參贊官)으로서 문묘에 청나라의 연호를 쓰지 말 것을 건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