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집의, 의주부윤,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치규(稚圭)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0년(숙종 6)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집의|의주부윤|승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집의, 의주부윤,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치규(稚圭). 한명길(韓命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치상(韓致相)이고, 아버지는 장령 한이원(韓以原)이며, 어머니는 홍성휴(洪聖休)의 딸이다.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25년(영조 1) 지평으로 소론 유봉휘(柳鳳輝)의 처벌을 요구하였고, 이듬해 장령으로 소론 대신의 소론 주장을 펴는 지평 이세진(李世璡)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또한 정언으로 숙의(淑儀) 책봉의 부당함과 궁궐 중수로 인한 재정 소비 및 궁가 절수의 폐단을 논하였다.

1727년 왜인 접대를 위해 동래에 파견되었고, 이후 헌납·집의·사간으로 있으면서 외직으로 쫓겨난 언관의 구원, 무신난 연루자의 처벌, 부정을 저지른 수령의 탄핵 등 강경한 언론을 행사하였다. 1732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 왔고, 집의, 의주부윤, 승지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