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배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지의금부사, 내의원제조,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하경(夏卿)
지곡(芝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50년(효종 1)
사망 연도
1722년(경종 2)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충훈부당상(忠勳府堂上)|지의금부사|내의원제조|공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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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지의금부사, 내의원제조,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하경(夏卿), 호는 지곡(芝谷). 한덕급(韓德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수원(韓壽遠)이고, 아버지는 남원부사 한성보(韓聖輔)이며, 어머니는 이준성(李畯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3년(숙종 19)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설서(說書)가 되었다. 이어 1700년 정언(正言)이 되어 옥중의 죄수와 통교(通交)한 강화유수 민진후(閔鎭厚)를 탄핵하였다. 1706년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오르고 필선(弼善)을 역임하였다.

1709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는데, 관내 내포(內浦)의 사족(士族) 땅을 몰래 점령하였다 하여 지평 이정억(李禎億)의 탄핵을 받고, 그 뒤 무주부사(茂朱府使)로 좌천되었다.

1720년(숙종 46) 충훈부당상(忠勳府堂上)에 임명되어 청은군(淸恩君)에 책록되고 이어서 지의금부사·내의원제조를 거쳐 1722년(경종 2)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충훈부당상으로 재직시 화원 진병해(秦丙奚)에게 목호룡(睦虎龍)의 초상을 그리도록 강요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관작을 추탈당하였다가, 죽은 뒤에 있었던 사실임이 판명되어 추복(追復)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호보(號譜)』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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