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석보(錫甫). 한경생(韓慶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유량(韓有良)이고, 아버지는 한제유(韓濟愈)이며, 어머니는 정광후(鄭光後)의 딸이다.
1702년(숙종 28)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고시관 김진구(金鎭龜)와 사촌사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언·사서·지평·문학 등을 지내면서 남인 당론을 주창한 이잠(李潛)의 처벌과 소론이 장악한 전조(銓曹)의 인사 행위의 불공정성을 탄핵하는 등 노론 당론을 심하게 주장하다가 체직당하였다.
1710년 장령으로 이조에서 과거 부정으로 오랫동안 폐고되어 있던 조대수(趙大壽)의 서용을 반대하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